그냥 살고 있다 는 좀 그렇잖아 일기장이라고 하자

가시의 양면

수엔 2022. 12. 26. 18:17
728x90

가시가 무성한 숲을 지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시에 긁히고 살이 뜯겨 온몸이 피칠갑이 되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 그중에는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머뭇대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앞사람에게 물었다.


"아프지 않아? 나는 팔이 찢어져서 못 가겠어."
"괜찮은데."


앞사람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어깨에 앉은 피딱지에 가시가 깊이 꽂힌 채였다. 저마다 몸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딱지는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떨어져 다시 피를 내기 일쑤였다.


"너도 가야지. 어서 와." 


앞사람이 손짓했다. 다시금 발을 디딘 사람은 벌벌 떨었다. 아프지도 않은가? 앞서가는 사람을 보며 생각했다. 살갗을 찢는 날카로운 아픔이 떠올랐다. 떨리는 손등에는 기다란 상흔이 아직 선명했다.

 



저 너머에는 줄 오르기가 한창이었다. 사람들은 높은 벽에 달린 줄을 잡고 올라갔다. 줄은 식물의 싱싱한 줄기로 만들어 끈끈한 즙이 배어 나왔다. 즙에는 독성이 있어 증발하면 공기와 함께 코로 들어간다. 독은 숨을 막히게 한다. 사람들은 벽을 오르다가 떨어지길 반복하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올랐다. 벽에는 수없이 많은 줄이 달려있었다. 사람들은 괜찮은 줄을 찾으려 계속 줄을 바꿔가며 움직였다.

 

가시나무 숲을 무난히 지나온 사람은 두어 번 줄에서 떨어지고 나자 오른쪽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다.


"숨을 참아봐."


오른쪽 사람 역시 뾰족한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던 중 왼쪽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자신보다 늦게 왔는데도 왼쪽 사람은 어느새 쭉쭉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왼쪽 사람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어떻게 저렇게 쉽게 올라가지?'


다시 시도해보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숨을 쉬지 못해 죽을 것 같은 고통도 함께 쌓여갔다. 위에 있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이 자상하게 설명해주었다.


"줄을 잘 만져봐. 가시가 없는 걸 찾아."


가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만져보면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모르겠다고 외치자, 벽 꼭대기까지 다 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따갑지 않은 걸 고르면 되는데."


줄에 의지한 채 벽 한가운데에서 숨이 막히던 공포가 살아난다. 이 줄 저 줄 아무리 만져봐도 모두 다 똑같이 매끄러웠다. 

 

 

 

 

Image by JL G from Pixabay

 


 

여름에 쓴 글.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저 땐 시야가 좀 좁았음. 주제에 대한 생각은 그대로지만, 가시나무와 가시 줄기에 관해서는 '자신이 얼마나 원하는가에 달렸다'라는 생각이 추가됨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