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살고 있다 는 좀 그렇잖아 일기장이라고 하자

물고기와 붉은 수초

수엔 2022. 10. 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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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까지 꽁꽁 얼어붙은 강에는 물고기 여러 마리가 잠들어 있다. 추위를 느끼지도 배고픔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저 잠들어 있다.

 

누군가가 물고기를 키우고 싶어 잠든 물고기 한 마리를 데려다 따뜻한 물가에 풀어 잠을 깨운다. 그리고 살려면 붉은 수초를 먹으라고 한다. 어서 먹으라고 한다. 다들 먹으니 너 또한 당연히 먹어야 한다고.

 

 

 

 

물고기는 붉은 수초를 먹고 싶지 않다. 먹으면 기침이 나고 몸이 따갑다. 다른 물고기도 붉은 수초를 좋아하지 않지만 살려고 먹는다고 한다. 좋아서 먹는 물고기는 없다고 한다. 그러니 너도 먹으라 한다. 

 

물고기는 파란 수초를 먹고 싶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파란색은 보이지 않는다. 강 너머 먼 바다로 나가면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붉은 수초를 먹지 않고 파란 수초를 찾아보기로 하지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다. 처음부터 파란 수초가 있는 곳에서 눈을 떴더라면 좋았을 텐데. 바다로 갈까. 바다로 가자.

 

천천히 바다 방향으로 헤엄을 치지만 다른 물고기가 재촉한다. 붉은 수초를 어서 먹으라고. 이대로는 죽을 거라고. 사실은 죽지 않는다. 배가 고프고 헤엄칠 힘이 부족하여 불편할 뿐 죽진 않는다. 알면서도 두렵다. 다른 물고기의 걱정 어린 충고가 하나둘 늘어난다. 폐를 조여 온다. 고통스러운 붉은 수초를 먹느니 불편함이 낫다. 불안함은 점점 커진다. 이러다 정말 죽는 거 아닐까.

 

오늘도 헤엄을 치지만 속도가 느리다. 바다에 갈 수 있을까. 실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바다로 가면서까지 먹고 싶지 않다. 애초에 왜 바다로 가야만 먹을 수 있단 말인가. 붉은 수초를 먹어야 할까. 차라리 잠들어 있는 편이 나은데. 
  

*

 

'깨워서 세상을 보여줬으니 고마워하겠지?'

인간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늘도 얼음을 자른다.


*

특별히 아끼는 물고기가 먹이를 먹지 않자 인간은 진심으로 걱정한다. 굶어 죽는 건 아닐지 안절부절못한다.

"왜 데려와서 사서 걱정을 해?"
"예쁘잖아. 그리고 얘들도 여기서 사는 거 좋아해."

여기저기서 물고기들이 열심히 수초를 뜯으며 꼬리를 흔든다.

"물어봤어?"


 

 

 

 


인간을 생각하며 쓴 글입니다. 반려동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Engin Akyurt님의 이미지 입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Полина Андреева님의 이미지 입니다.


기분이 바닥을 치고 스트레스 엄청났던 몇 달 전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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